1. 측량의 발달
측량의 역사는 언제부터 시작되었다고 단언하기 어렵지만 인류 문화의 발달과 함께 시작되었다고 볼 수 있습니다. 역사적 기록에 의하면 측량은 이집트에서부터 비롯되었다고 합니다.
후푸 왕조가 기원전 4700년경에 건설한 피라미드 저부의 오차가 방위 90도에서 평균 12“이고 변의 길이 455피트에 대하여 0.05피트인 것은 그 당시 측량 기술의 발달을 가늠할 수 있으며, 기원전 3000년경 이집트 나일강 하류의 대홍수 범람에 따른 경작지 정리와 경계 복원 측량에 로프를 이용한 경계 측량에 대한 기록을 측량의 시초로 보기도 합니다.
에라토스테네스는 기원전 220년 최초로 지구의 자오선 호장을 구하였으며 그리스의 혜런은 기원전 120년 그의 논문에서 최초의 측량 장비라 할 수 있는 세오돌라이트의 전신이 디옵터를 언급하였습니다. 그러나 본격적인 측량의 발달은 기원후 1세기경 로마인에 의하여 이루어졌습니다. 로마인들의 측량 기술은 그들이 건설한 대규모 건설공사에서 입증되고 있습니다.
그리고 15세기 들어 측량 기술은 큰 발전을 이루었습니다. 아랍인에 의해 컴퍼스가 발명되었고 1538년 메르카토르가 메르카토르 투영법을 고안하였습니다. 그 후 1740년 시 쏜 와이레벨 발명, 1795년 독일 가우스의 최소제곱법, 1831년 영의 트랜싯 등이 개발되었습니다. 1850년경 사진측량의 아버지라 불리는 프랑스의 로세다는 사진측량에 의해 지형도 제작을 시도하였으며, 그 후 20세기에 독일의 풀프리히는 입체도화기와 정밀좌표관측기를 개발하여 근대 사진측량의 기초를 이루었습니다. 제 1, 2차 세계대전을 치르면서 항공 기술과 전자기술에 힘입어 지도 제작법, 측량기의 개발, 측량 방법의 발달에 비약적인 진전이 이루어졌습니다. 최근에는 첨단광학장비, 전자장비 및 인공위성에 의한 관측과 지형정보 구축, 자료의 전산 처리 등을 통화여 지구 및 우주개발에 큰 역할을 하기에 이르렀습니다.
2. 대한민국 측량사
우리나라 측량 기술의 발달은 삼국사기, 삼국유사에서 고구려 영류왕 때 봉역도 제작, 신라 경덕왕 때 신라 구주현 총도 제작 그리고 백제에서 천문지리서 등에 대한 기록을 통해 찾을 수 있습니다. 또한 고려시대에서는 목종(997~1009) 때 전국을 10도로 나눈 고려지리도, 현종(1009~1031) 때는 5도로 개정한 오도양계주현총도가 있습니다.
조선시대에서는 초기 세계지도인 혼일강리역대국도지도와 천하도가 제작되었고 세종 때는 천체 관측용 측각기인 간의, 천문 측량용 시계 혼천의 등이 제작되었습니다.
조선시대 중기에는 조선 영조 때의 실학자 정상기가 1463년에 팔도지도를 기초로 하여 현대 지도에 가까운 9첩의 지도첩인 동국지도를 제작하였습니다. 또한 1834년 김정호의 청구도가 제작되었으며 이를 기초로 하여 1861년에는 대동여지도를 제작(축척 1:162,000)하였습니다. 이 지도는 전국을 22단으로 나누었으며 도로선상에 십 리 간격으로 점을 찍고 하천, 바다, 산, 산맥 등을 일정한 기호로 표시하는 등 일반인들이 사용에 편리해지게 만든 지도로서 우리나라 근대 지도의 효시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일본이 전시에 사용하기 위해 축척 1:2,000,000의 54 도엽의 한국 전도를 제작(1894~1895)하였으며 1900년에는 최초의 토지조사사업으로 지적측량이 시작되었습니다. 그리고 1905년에는 측량기술자를 양성하기 위해 시작하였고 1909년에는 서울, 경기 일부 및 대구 부근에 11개의 구고 삼각 원점을 설치하고 설치하고 삼각측량이 시시하였습니다. 1910년 1월에는 토지조사사업 시행계획이 수립되어 1910년부터 1918년 사이 전국적인 삼각측량(기선측량), 수준측량(검조적 설치: 청진, 원산, 목포, 진남포, 인천) 도근측량, 지형측량에 의해 축척 1:50,0000지형도, 1:1,200지적도가 제작되었습니다.
1945년 해방 후 일본육지 측량 부를 미군정청이 인수하여 항공 수송 사진측량에 의한 국토 기본도(1:50,000)를 수정·보완하였으며, 1950 한국전쟁이 발발 후 지도 투영법을 Tm에서 UTM으로 변환하였다. 또한 1957년 국방부 산하 국립 지리연구소를 설립하여 육군 측지부대와 공동사업으로 3,4등 삼각점을 정비하였습니다. 그리고 1961년 12월 31일에는 측량법이 제정, 공포되었습니다. 그 후 1966년부터 1969년까지 우리나라와 네덜란드 공동 협약에 의한 국토기본도(1/50,000, 1/25,000)를 항공사진측량으로 개선 제작하였으며, 1971년에는 측량사의 면허제도가 처음 실시되었습니다. 1974년 비로소 건설부 산하 국립지리원이 창설되어 측량에 대한 국가적 체계가 마련되었으며, 1974년에는 정밀 1등 수준점 정비를 시작하였고 1975년부터는 1:5,000 국토 기본도 제작을 착수하였습니다.
또한, 1975년부터 1993년까지 정밀 1차 기준점을 EDM에 의한 삼변측량으로 삼각점을 갱신하였습니다.
그리고 1981년 8월부터 1985년 10월까지 정밀 천문 측량을 실시하여 국립지리원 내에 대한민국 고유의 국제공인 경위도 원점을 설정하였습니다. 1992년에는 수치지도 작업 규칙 제정되어 1995년부터 2001년까지 제1차 국가지리정보체계(NGIS) 사업이 추진되어 수치지도로 축척 1:5,000 16,194도엽, 1:25,000 750 도엽의 제작이 완성되었습다. 2000년부터는 건설교통부 국토지리정보원(구 국립지리원)을 중심으로 한국 측지계 재정립을 추진하고 있으며, 2004년부터 2015년까지는 지적 재조사 사업을 추진할 예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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